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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건강 및 조직문화 콘텐츠/심리적 안전감_연결감

[연결감] 연결, 평가하지 않고 서로에게 가 닿기.

연결+감, 연결된 느낌 혹은 연결에 대한 느낌이라고 쉽게 표현할 수는 있지만, 여전히 “연결”이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이 남는다. 게다가 연결~연결감 사이는 읽는 사람의 입장에서도 굉장히 다르게 다가오는 부분이 있다. 연결감에서의 ‘연결’이 초연결에서의 ‘연결’과는 무언가 다르지 않은가? 그렇다면 이것은 왜 다르며, 어떤 부분이 다를까? 연결감은 왠지 마음과 감정에 관한 것인 느낌적인 느낌이 든다면, 그냥 ‘연결’로 두면, 레카차가 고장난 차를 연결하고, 스마트폰에 충전케이블을 연결하고, 소비자와 생산자를 연결하는 플랫폼의 그림이 쉽게 떠오르는 것이다. 연결감에서 말하는 마음의 “연결”은 동시대 최고의 리더십 및 사회 복지, 그리고 취약성 연구자로 알려진 브레네 브라운의 말에서 가져와 본다. 

 

연결이란, 사람들이 관심있게 바라봐지고, 관계맺음으로부터 삶의 내구성과 힘을 이끌어 낼 때, 평가없이 서로 주고 받을 때, 그리고 상대방에게 내가 바라봐지고, 자신이 한 말이 상대에 들리고, 가치있음을 느끼는 가운데에 존재하는 에너지이다. (Brene Brown)

 

연결감은 브레네 브라운이 말하는 “연결”을 좀 더 이해하기 쉽게 말한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또 동시에 연결감이 정확히 학계에서 통용하거나 연구되어 이론화를 거친 용어는 아닌 일반적인 단어이기도 하다. 여기서 중요한 초점은 ‘정의’가 아니라 그 연결감이 왜 필요하고, 어떻게 하면 내가 그것을 느끼고, 찾으면서 일상적인 마음에서 적용할 수 있는가이다. 그러기 위해 다시 브레네 브라운의 연결의 정의 및 영어단어를 좀 돌아볼 필요가 있다. 영어권에서 connect는 기본적으로 사람과 사람 사이의 마음의 연결이라는 의미를 자주 내포한다. 그러나 한국 사회에서는 왠지 집단의 규범 및 도리와 그 안에서 개인의 역할과 책임 등이 강조되면서 개인의 마음(감정)에 대한 연결의 의미가 희미한 편이다. 관계 내에서의 ‘연결’은 영어로 connection이다. “연결감”을 영어로 번역해 보면, connection, feeling of connection, 그리고 connectedness 등으로 나온다. 여기서 우선적으로 얘기하는 연결감은   “connectedness”이다. 이렇게 단어들을 나열하고 자세히 말하는 것은 굉장히 중요하다. 앞으로도 이 책에서 나오는 단어들은 미세하고도 자세한 의미를 풀어야 하는 경우가 있을 것이다. 3가지의 차이는 무얼까? 그냥 단순하게 직역해서 접근하면, connection은 무언가 연결됨이라는 명사형, feeling of connection은 연결의 느낌, connectedness는 연결된 느낌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그 중에서도 connectedness를 불러 온 것은 바로 “연결된 느낌”때문이다. ‘연결한’이 아닌, ‘연결된’이라는 말은 수동의 뜻인데, 이것은 내가 무언가를 이루려고 행동하는 능동 혹은 의지가 아니라, 상대방의 행동 또는 외부의 자극에 의해서 생긴다는 의미다. 이는 연결에 대한 브라운의 정의에서 ‘seen, heard, valued’라고 쓴 부분과 일맥상통한다. 나 혼자만의 선택이나 행동만으로 연결이 가능한 게 아니라 상대방이 같이 응답(response)해 주어야만 가능하다는 문법적 형태로써, 주어와 목적어가 엄연히 존재하고 이쪽에서 저쪽으로 흐르는 방향성이 있는 소통행위이다. 동시에 내가 보낸 신호의 시작부터 상대방이 호응하는 사이에 흐르는 시간이 같이 담겨있는 표현으로서의 수동태, connectedness이다. 즉, 내가 드러낸 진실함이나 취약함을 상대방이 받아주지 않는다면 연결되지 않는다. 그래서, 연결감은 한 사람의 의지나 선택으로 가능한 성과목표가 아니라, 상호간의 마음이 ‘닿는’마법같은 감각이자 감정이다. 

그런가 하면, 또 중요한 지점은 바로 “평가없이”라는 대목이다. 중요한 곳은 ‘없이’라는 어미다. 평가에 방점을 찍으면, 자꾸 부정~긍정, 단점~장점 등의 프레임에 갇히게 된다. 결국 이분법적 사고에 기반한 소통을 하게 되는데, 이는 다시 “긍정적 평가”, 즉 칭찬이라는 형태로 관계를 맺으려고 하는 버릇이 등장한다. 칭찬을 받는데 왜 기분이 별로지 하는 순간들이 바로 그 때이다. 여전히 서로는 연결되지 않는다. 그러면, 다시 ‘평가없이’는 어떻게 다가가는가? 서로가 서로의 마음에 닿는다는 것은 라디오의 주파수를 맞추는 일과 비슷하다. 평가는 아마도 ‘불합격 결과’, ‘통과 성과’ 등의 “사실”주파수이다. 앞서 대화에서 A는 자신의 자책하는 감정을 호소하고 있다. B가 A의 말에 대해, “왜? 오늘 무슨 일이 또 있었어?”, “아이고, 힘든가 보다, 네 탓이 아니야”등으로 대답하며, A가 호소하는 두려움과 자책의 감정이 B에게 들려야 한다. 즉, B가 자신의 주파수를 사실에서 “감정”으로 바꾸어야만 두 사람 사이는 연결된다. B가 A의 말을 듣고, 주파수를 발견하고 바꾸는 순간, A와 B라는 두 섬 사이에 연락선의 소식이 닿은 - A의 신호를 B가 받아서 비로소 연결된 (connected) - 셈이다. 이 순간은 매우 짧다. 그리고 다시 바꾼 주파수를 유지하여 B가 말을 이어가면, A와 B 두 점은 이어진 상태를 유지한다. 마음이 동조(tuned)된 상태와 그 동조가 지속된 시간이 바로 연결감의 시간이다. 이 순간은 짧게 생겼다 사라지기도 하지만, 두 사람 사이의 보이지 않는 노력은 이 상태를 유지하는 데 기여한다. B의 주파수 변화는 바로 ‘듣기’의 시작이다. 이제 비로소 둘은 대화의 춤, 관계의 하모니를 만드는 연결감을 시작할 수 있게 된다. 이 그 상호간의 무드가 A(나)의 이야기의 끝, ‘여기까지야’하는 때까지 지속되면, 1차적인 연결감의 시간이 끝난다. 그래서 나는 연결감의 단위를 초, 분, 시간 - 공감 상태가 유지 및 지속되는 시간 - 등 이라고 말한다. 이것이 바로 연결감의 한 사이클이다. 그래서 연결감은 정량적으로도 말할 수 있다. 

그리고 연결감 사이클이 지속적으로 이어지는 데에는 특별히 “호기심”이라는 연료가 필요하다. 호기심은 미지의 것에 대한 관심이다. 미지란 사람관계 속에서의 아직 알지 못한다는 뜻이다. 이는 듣는 이가 말하는 이의 마음을  추정, 단정, 선입견 등으로 가로막지 않고, 유지하는 무언의 제스처, 호흡, 관심의 내보임, 그리고 말투, 목소리의 높이와 속도 등 총체적인 상태를 유지하는 진정성의 총체가 바로 호기심이다. 당연히, 호기심을 보이기는 커녕, ‘나는 너에겐 관심이 없고, 나의 기준에 너를 맞추라’라고 말하는 ‘라떼는’이 듣기 싫고, 그 말을 한 사람을 싫어하게 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첨언하면, 주파수를 맞추는 B의 선택은 B가 자신의 지위, 나이 등을 잊어버린 결과다. 이런 면에서 연결감은 권력의 반대말이기도 하며, 결과를 원인으로 바꾸는 역명제는 성립하지 않는다. B가 A에게 제공하는 이 느낌을 바로 ‘심리적 안전감’이라고 부른다.